[2024-07-26 10:04]
소주 도수는 낮아지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알코올 음료 중에서 가성비 최고의 음료는 바로 ‘희석식 소주’다. 지구에서 가장 저렴한 농산물을 수입해 만들어내는 발효 주정에 물과 각종 조미료를 넣어서 생산되는 초록색 병의 희석식 소주는 이런 이유로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의 벗이었다.
그러던 희석식 소주가 알코올 도수가 조금씩 낮아졌다. 비어(맥주), 막걸리, 포도주(와인) 등 모든 술의 알코올 도수가 예전 그대로인데 소주만 계속 알코올 도수가 낮아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기업의 매출과 이익증대처럼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결과적인 이야기다. 낮아진 알코올 도수의 겉으로 드러난 가장 큰 동기는 소주 소비층의 변화다. 여성의 사회적인 활동이 증가하면서 자‧타의적으로 회식을 통해 외식에 대한 접근도가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식사와 같이 곁들여지는 반주로 인해 술을 가까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런 환경에서 희석식 소주의 높은 알코올 도수는 여성이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새롭게 등장한 소비층은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놓치기 아까운 존재였다.
그래서 기업은 여성의 소비성향에 맞춘 새로운 술을 만들어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담스러웠던 여성들을 위해 칵테일 소주가 한동안 유행을 했다. 또 비어와 섞어 마시는 경향이 증가했다. 이를 발 빠르게 상품으로 접목시킨 것이 바로 ‘저도수 희석식 소주’다. 이렇게 여성을 위해서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추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식 소주의 도수가 더 낮아졌다. 한번 낮아지기 시작한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제품끼리 경쟁하듯이 낮아졌고 여성 소비층을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 과도하게 낮아진 알코올의 도수에는 여성 소비자를 위해서라기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바로 광고다. 광고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제품을 알리는 것도 있겠으나 노출이 가장 큰 목적이다. 노출될수록 접근에 대한 소비자의 부담을 덜하다. 모든 제품이 그래서 비용을 들여가며 광고를 하는 거다.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진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에서는 알코올 도수 17도 이상의 주류에 대해서는 시간대를 불문하고 광고 방송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런 의견을 내는 시선들이 많은 이유는 선두권에있는 생산업체에서 2020년 5월경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17.0%에서 16.9%로 낮추었기 때문이다. 다른 경쟁회사에서도 연이어 생산되는 희석식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16.9%로 낮추었다.
그러나 2023년 소주의 심리적인 지지선으로 인식되던 16%가 깨졌다. 대전의 한 주류기업에서 알코올 도수 14.9%짜리 희석식 소주의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알코올 도수 35%에서 시작한 희석식 소주가 14.9%가 되는데 걸린 시간은 약 100(99)년이 걸렸다. 소주는 증류주를 우리식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최근의 소주의 저도수화 경향은 높은 알코올도수를 얻기 위해 발효주를 증류한 술이라는 증류주의 존재 의미마저 무색해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무엇이든 존재의 의미가 담겨 명칭이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소주를 생산하는 업체들의 로비로 구분이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으나 아직까지 필자와 같은 사람이 소주를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구분하는 이유도 같다. 소주(燒酒)와 소주(燒酎)의 구분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돈을 벌어야만 존재 이유가 주목받는 세상이지만 소주(燒酒)가 고유명사로서의 본성을 잃는 것은 우리 시대가 사라지게 하는 또 하나의 문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