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의 승자는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3)자존심 싸움에서 번진 전쟁의 기운

[2024-06-17 09:23]

 

백년전쟁의 승자는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3

자존심 싸움에서 번진 전쟁의 기운

시간이 지나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다시 발생한 계기는 스코틀랜드였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는 대결 구도였으나 프랑스와는 우호적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에드워드 3세의 지지를 받는 바리올 왕가와 필리프 6세의 지원을 받는 브르스 왕가 간의 내분으로 시작된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다.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와의 갈등을 피하려고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귀족이 나서는 거까지 막지는 않았다. 잉글랜드의 귀족과 에드워드 바리올이 이끄는 군대가 스코틀랜드 군대를 공격해 데이비드 2세를 쫓아내고 에드워드 바리올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른다. 어린 ‘데이비드 2세’는 안전을 위해 프랑스로 정치적인 망명을 한다.

이때부터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갈등이 시작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잡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에드워드 바리올이 왕이었지만 브르스 왕가를 지지하는 귀족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분란이 잦았다. 브리튼 섬에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프랑스는 잉글랜드가 그동안 브리스 왕가에 해왔던 조치에 항의하며 우회적으로는 데이비드 2세를 따르는 스코틀랜드 반란군을 계속 지원했다. 바다에서는 프랑스의 통제를 받는 사략선과 브르스 왕가를 지지하는 스코틀랜드의 사략선이 연합하여 잉글랜드의 상선을 약탈하는 일이 잦았다. 프랑스는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했다. 이들은 육지에서도 함께 잉글랜드의 여러 마을을 습격해 약탈했다. 모든 상황의 배후에는 프랑스가 있다는 것을 파악한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가 스코틀랜드를 지원하는 것에 분노하며 자신이 당한 것을 갚아 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군대를 소집해 다시 스코틀랜드를 침공한다.

필리프 6세는 에드워드 3세를 압박하려고 아비뇽에 있던 교황(베네딕토 12세)에게 요청해 공동으로 중재할 것을 제의했다. 유럽의 모든 왕실이 가톨릭을 믿다 보니 교황의 권위가 원래는 높았으나 ‘아비뇽 유수’ 이후로 교황청이 프랑스의 입김에 움직인다는 것을 알기에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교황의 중재가 중립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두 나라 간의 입장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협상도 쉽지 않았다. 1336년 에드워드 3세가 다시 스코틀랜드를 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이에 필리프 6세도 해군을 동원해서 잉글랜드 해안의 여러 마을을 공격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프랑스 왕위를 두고 일어난 갈등은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완화되었지만 스코틀랜드와 관련된 이해관계와 잉글랜드로 망명한 프랑스 귀족 ‘로베르 드아르투아’의 송환 문제 등으로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 두 나라 간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고 필리프 6세는 에드워드 3세의 영지를 몰수하겠다며 군대가 다시 가스코뉴로 보내 공격하였다. 가스코뉴가 약탈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에드워드 3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루트비히 4세)와 주요 공국(공작이 다스리는 나라)과 백국(백작이 다스리는 나라)의 여러 제후와 동맹을 맺어 일전을 준비했다. 이는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보헤미아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을 끌어들였고 사보이와 제네바 등 주요 백국의 지원을 확보했다. 이제 두 나라 간의 일전은 초읽기 상태로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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