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의 승자는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5)트리거가 된 스코틀랜드, 플랑드르, 그리고 아키텐

[2024-06-23  11:43]

 

백년전쟁의 승자는 프랑스가 아닌 잉글랜드-5

트리거가 된 플랑드르, 그리고 아키텐

에드워드 3세는 소식을 듣고 즉시 사절단을 보냈다. 사절단은 플랑드르의 여러 도시를 돌며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도록 권유했다. 이에 겐트를 비롯한 몇몇 도시가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고 양모 공급을 재개하기로 약속받았다. 더불어 잉글랜드군이 플랑드르로 상륙을 하는데 동의했다. 또 병력동원은 어려우나 병력이 사용할 물자를 지원하고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사절단에게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은 에드워드 3세는 1337년에 4천여 명의 병력을 보내 플랑드르 일대의 프랑스군 거점을 공격하도록 했다. 잉글랜드의 침략을 대비하던 프랑스군이 카잔트에서 패하는 것을 지켜본 플랑드르의 시민들은 점점 잉글랜드 군대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잉글랜드와의 동맹에 망설이던 다른 도시들까지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자는 여론이 높아졌다. 여기에 플랑드르의 반란을 진압하고자 병력을 이끌고 온 루이 1세의 군대를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은 반란군이 승리하면서 에드워드 3세는 전쟁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새로운 프랑스 국왕을 옹립하려는 플랑드르의 시민의 분위기에 에드워드 3세는 겐트를 방문하고 시민들의 권유를 받아 프랑스의 국왕으로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이런 소식은 필리프 6세에게도 전해진다. 필리프 6세는 분노했고 이렇게 고조된 갈등은 온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두 나라 간의 본격적인 전쟁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고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필리프 6세는 프랑스의 봉신(공작)으로 프랑스의 왕인 자신에게 충성서약을 했던 에드워드 3세가 이를 어기고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필리프 6세는 에드워드 3세를 반역죄로 단정하고 그의 영지인 아키텐 지역의 토지를 몰수하기로 결정하고 군대를 보냈다.

아키텐의 가스코뉴 지역 여러 마을에서는 프랑스군의 습격과 약탈이 시작되었다. 아키텐 일대는 에드워드 3세에게 있어서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키텐의 중심지 가스코뉴에는 오늘날에도 프랑스산 포도주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부르고뉴와 더불어 최고 등급의 포도주가 생산되는 보르도가 있다. 당시에도 너무나도 잘 알려졌던 보르도를 포함해 가스코뉴는 포도주 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가스코뉴에서 유럽 전체에 공급한 포도주의 수량은 한 해 기준 약 1억 병(750ml 기준)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벌어들이는 수입도 팔려나가는 수량만큼이나 엄청났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잉글랜드 전체에서 거둬들이는 조세보다 아키텐의 가스코뉴에서 포도주를 팔아서 나오는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하니 에드워드 3세에게 아키텐은 금전적인 가치와 지리적인 중요도에서 모두 잉글랜드 못지않게 중요했고 양보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을 필리프 6세가 빼앗겠다며 노르망디 해안에 함대를 보내 잉글랜드에 무력 시위는 물론 아키텐을 포위하고 주변 마을을 약탈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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