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9 23:23]
1925년에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는 –감자에 대한 선입견이 만든 혁명
하얀색부터 연보라, 보라까지 감자는 색에 따라 피어나는 꽃의 색깔도 다르다. 1785년 8월 23일이 생일이었던 루이 16세는 신하에게 다양한 색의 감자꽃을 선물로 받았다. 감자꽃에 신기해하던 루이 16세는 자신의 옷에 있는 단추 구멍을 감자꽃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에도 꽃을 나눠주어 옷에 감자꽃 장식을 하도록 했다. 감자꽃을 준 신하가 기획한 파티에서는 감자로 만든 빵과 스프, 후식 등 다양한 형태의 음식들이 코스로 나와 참석자들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나온 감자로 만든 요리가 마음에 들었던 루이 16세는 파티를 기획한 신하가 원하는 대로 파리 근교 땅에 감자를 재배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렇다. 감자를 직접 맛본 루이 16세는 분명 감자를 재배하고 보급하는 것에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감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없었기 때문에 선입견도 없었다. 문제는 프랑스의 대중이었다. 가톨릭을 믿었던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씨앗을 뿌려 수확한 밀로 만드는 빵과 달리 감자는 경전에서 언급되지 않는 방법으로 재배하는 불순한 존재였다. 당시에 상황에서 경전이 담은 좁은 시야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감자를 통해 당시의 프랑스 대중이 경전에서 언급한 것만을 조건 없이 수용하면서 나머지는 무조건 나쁘다는 자세를 가지면서 만들어낸 편협함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기존에 있던 감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프랑스인들이 감자를 먹거리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소요되도록 만들었다. 파리 인근에서 재배되었던 감자가 재배지 주변으로는 어느 정도 보급되었으나 프랑스 대중이 기존에 가졌던 정서를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감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이 감자에 대한 당시 프랑스 대중의 오해와 편견을 바탕으로 굳어져 버린 선입견과 편협함이다. 다른 농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가고 수확에 걸리는 기간이 짧으며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감자가 좀 더 빠르게 먹거리로 정착되었더라면 최소한 1789년(프랑스 혁명이 있었던 해) 이전에 프랑스에서는 배고픔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에는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빵을 요구했던 프랑스 혁명은 역사 속에서 존재할 수 있었을까? 혁명이 없었다면 툴롱전투에서 활약한 포병 대위 나폴레옹도 역사에 등장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거다. 물론 역사에서‘가정’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기에 이 내용은 여기서 줄이자.
다만 필자의 생각에 감자의 흐름을 읽으면서 독자가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순간이 우리에게 닥쳤을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이다. 감자 이야기에는 감자를 두고 벌어지는 각 나라의 왕들이 했던 여러 선택이 이어진다. 당시의 왕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감자에 대해 했던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어 주어지는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감자라는 하나의 요소를 가지고 했던 선택으로 부국강병을 이룬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에게는 매 순간 닥치는 선택의 순간이 닥친다. 그때 하는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가 경중이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