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에 색을 입힌 발효

[2024-07-02   22:24]

 

로컬에 색을 입힌 발효

 

사람과 자원, 다양한 인프라 등을 비롯한 모든 게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지역의 경제는 상대적으로 점점 낙후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지리적인 특성 같은 가치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그런 특성을 유지 발전하여 지역의 경제에 새로운 변화와 활력을 만들어가자는 의미에서 최근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로컬이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지원함에 있어 많은 명분을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자구책으로 진행하는 여러 사업에 로컬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로컬이 가진 특성을 살리는 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음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지역마다 사람의 색(色)에 차이가 있다. 사람에게 색이 있다고? 물음표를 발산하는 분들이 있을 거다. 겉으로 보이는 초록, 빨강, 노랑, 하양, 검정 같은 게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색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말의 억양과 사용하는 단어, 성격, 식성, 생활방식, 습관, 모습, 가치관 등으로 말이다. 사람 색을 결정하는 요인은 각자에게 주어진 유전자와 누구나 갖는 일상의 환경이다. 위에 언급하지 않은 것 중에 사람의 색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음식이다. 독자분들도 동의하는가? 음식은 사람에게 일상의 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 사람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먹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삶의 경험이 조금씩 다르다.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에서 나오는 식재료를 먹어보기 어려웠을 것이고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은 산에서 나오는 여러 식재료를 먹어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지형적인 특성은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지리적인 영향까지 더해져 교통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197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명확하게 달랐다. 육지와 바다, 산과 평야 등의 요인이 지형에 따른 각 지역의 차이를 만들었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떠나 지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식이었다. 앞서언급한대로 각 지역에 주어진 기후와 지형에 따른 지리적인 여건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식물의 서식 환경이 달랐기에 먹거리도 달랐다. 서로 다른 식자재는 각기 다른 음식 문화를 만들었다. 같은 바닷가였으나 전라도는 젓갈이 유명했고 강원도는 식혜를 만들어 먹었다. 경상도의 바닷가에서는 생선을 바로 잡아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으나 안동 같은 내륙에서는 생선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고등어 등의 생선에 천일염으로 간을 맞춰 염장 생선을 만들어 장기 보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사용했다. 또 같은 전라도였어도 해안가는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주로 먹었으나 바다에서 멀었던 남원에서는 논에서 키우던 추어(미꾸라지)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이처럼 지역의 환경적인 특성에 따라 주어진 식재료가 달랐기에 식생활에서 먹는 음식에 차이가 있었다. 교통의 발달로 운송 수단의 변화와 함께 유통망이 급성장하여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바뀌는 19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식재료 뿐만이 아니다.

요즘과 같은 냉장 시설이 없던 당시에 음식을 장기 보관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방법이 발효다. 젓갈, 생선은 물론 각종 김치까지 모든 발효는 염장으로 진행됐다. 콩을 이용한 발효도 있었다. 콩은 먼저 메주라는 형태를 만들었다. 메주를 어떻게 띄우냐에 따라 장의 맛이 결정되었기에 메주를 띄우는 조건과 과정은 좋은 장(醬)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했다. 거기에 소금의 도움을 받아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의 장류를 만들었다. 콩을 이용한 발효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소스류의 세계화로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발효에서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된장의 색이 지역마다 조금 다르다. 콩이 재배되는 환경에 따른 차이와 함께 장이 발효되는 기후와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치가 만든 지리적인 영향과 각 지역 지형이 만드는 온도와 습도의 차이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별로 생산되는 쌀의 품질 차이는 크지 않았으나 각 지역마다의 기후적인 차이는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누룩의 형태가 달라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장을 만들 때는 메주를 만들어 사용했다면 술을 만들 때는 누룩을 만들어 사용했다. 곡식을 발효시키는 발효제로 사용하는 누룩을 어떤 조건에서 만드느냐에 따라 술맛에는 차이가 있다. 곡식으로 만드는 누룩에 곰팡이가 붙어 곡식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고 이 효소를 이용해 곡식을 이용한 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마다 기후가 다르니 균의 종류도 다를 수 있다. 지역이 갖는 지형과 지리적인 차이는 일조량과 같은 자연적인 환경에 영향을 준다. 이런 요소들이 술의 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숙성에까지 영향을 주어 술이 맛이 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후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음식보다도 술에서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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