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①-술이 아니라 ‘광약’이다.

[2024-07-24   08:43]

 

영조①-술이 아니라 ‘광약’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금주령의 시작은 백제다. 온조의 뒤를 이어 백제의 왕이 된 2대 다루왕이 흉년이 들어 금주령을 내렸다. 이후 흉년이 들거나 전란이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금주령이 있었다. 금주령을 내린 왕은 여럿이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왕은 바로 조선의 영조다. 영조는 금주령을 온 나라에서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려면 왕실부터 본을 보여야 한다며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에서 사용하는 술마저 원칙을 깨고 누룩으로 만든 ‘예주(醴酒)’를 사용하도록 했다. 오랜 시간 술을 사용했던 종묘의 제사마저 일반적인 술이 아니라 예주라고 불리는 ‘감주(甘酒, 단술)’를 사용한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의 사신을 접대할 때도 술을 대신해서 예주를 사용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간혹 감주가 맛이 달아서 식혜라고 언급하는 자료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식혜는 엿기름으로 만든 것이고 감주는 누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술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금주령을 내린다. 술을 ‘광약(狂藥, 미치게 하는 약)’이라고 부르며 모두에게 경계하도록 했다. 술은 사람의 맑고 아름다운 정신과 기질을 혼탁하고 약하게 만든다는 이유다. 1755년 소론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자 화가 난 영조가 폭음하며 주사(酒邪)를 부렸다고도 한다. 그해 흉년이 닥치자 영조는 가장 강력한 금주령을 준비한다. 1756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주령이 내려진다. 왕이 먼저 모범을 보이겠다며 왕실의 종묘 제사에서마저 술을 사용하지 않자 사대부와 백성도 술에 대해 경계했다. 술을 마시다가 걸리면 사대부는 유배를 가야 했고 선비는 유생명부에서 지워지거나 과거를 볼 수 없었다. 중인과 서얼은 수군으로 배치되어 복무를 해야 했고 서민과 천민은 노비가 됐다.

더 나아가 연좌법까지 있어 옆집이 술을 마시다가 걸리면 같이 벌을 받아야 했다. 1762년에는 금주령을 어기면 사형시키기로 처벌내용을 강화한다. 같은 해, 영조는 술로 시작된 의심으로 세자(7월)를 죽게 했다. 술 냄새가 나는 빈 항아리로 인해 윤구연(9월)은 참수됐다. 이를 통해 백성들은 금주령을 어기면 자신은 물론 집안이 ‘풍비박산(風飛雹散)’되는 결과를 알게 되었고 술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금주령을 시행한다는 걸 알려도 백성이 술을 마시다 계속 걸린다는 것이다. 영조는 백성에게 이런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리기 위해 기존과 달리 한글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1762년에 작성된 ‘어제경민음(御製警民音, 임금이 백성을 경계하게 하려면 직접 하는 소리 1762년)’은 영조의 이런 의도로 작성되었다.

어제경민음은 한문으로 작성하거나 한문을 번역해 작성된 기존의 다른 금주령 내용과는 달리 처음부터 한글로 쓰인 것으로 금주령에 대한 영조의 진심이 담겨있다. 내용을 잠시 보면 ‘백성이 금주령을 어겨 처벌받는 일이 자주 생기는 것은 금주령의 내용을 백성이 잘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이고 이를 잘 알리지 못한 게 왕인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강조했다. 한문본으로 금주령을 내리거나 한문본을 ‘언문(諺文, 한글의 낮춤말)’으로 번역하면서 ‘잘못된 해석으로 백성이 금주령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모르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죄를 짓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영조는 ‘금주령을 활자로 된 언문으로 작성해서 금주령을 몰라 죄를 짓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이제 모두 알았을 테니 꼭 지키라는 통보였다. 또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금주령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성실히 지키라고 당부하는 내용을 담았다.

영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어제경민음’에 금주령을 어겨 처형당하는 상황까지 자세히 묘사하는 글을 넣어 금주령에 대한 왕의 진심과 경고가 담긴 내용을 팔도(八道)의 백성이 읽도록 했다. 금주령을 모두가 알게 할 목적으로 시작된 영조의 한글사용 덕에 금주령을 어겼을 때 당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불이익의 내용은 백성에게 알려졌다.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진 당시의 금주령은 중간에 이런 보완을 거치면서 1767년까지 10여 년이 넘도록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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